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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2

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들 규장각은 1776년 설치된 왕의 도서관이다. 조선의 선비들은 이곳에서 글을 닦고 시를 읊었다. 정치인들을 배출하는 곳이기도 하였고, 같이 수학하던 친구를 배신하고 정권의 머리에 오르기도 했다. 정조가 규장각을 세운 이유는 개혁이라는 기치 아래 자신과 함께할 학문을 기반으로 한 왕권을 곤고히 하기 위함이었다.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는 뒤늦게 '죄인의 아들'이라는 멍애를 벗어던지고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룩하기에 이른다. 규장각의 유생과 함께 정조를 위협하는 세력을 정비하였다. '성왕론'을 정당화 하여 학문을 장려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개혁정치를 핀다. 규장각은 그의 이념을 함축해 놓은 것이다. 세조때 이미 양성지가 규장각 설립을 주장하였으나 그 뜻을 펴지 못했다. 정조때에 와서야 창덕궁으로 옮기면서 2층 누각.. 2008. 12. 19.
아들은 아들이다. - 아버지의 편지를 읽고 - 근대화가 이루어지기 전 우리나라는 조선이라는 500년의 역사를 짊어지고 살았다. 과거제도로 학자들이 선발되고 성균관, 집현전, 규장각을 통해 인재가 배출되었다. 이들은 서로 파벌을 형성하고 집단화로 인해 조선은 그렇게 성장하고 아파했다. 그 속을 파해쳐 보면 때론 방관하고 때론 주도하며 업치락 뒤치락을 반복했다. 그 와중에 조선 선비들은 나름의 가정을 아끼고 사랑하며 지켜나갔다. 자신의 오만이 세상을 좌지우지하고 초야에 뭍혀 문사만을 하며 살아간 선비도 허다하다. 붕쟁으로 피바람을 일으키기를 서슴치 않았던 조선시대. 조선의 선비이며 아버지이기도 한 그들은 자식앞에선 초연함과 의젓함을 잃지 않고 채찍과 사랑으로 편지를 건냈다. 이 책은 파벌을 초월한 자식사랑이 면면이 흐르고 있다. 편지 속은 자식의 무례함.. 2008. 1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