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먹는 기호 음료이다.
우리나라는 커피라는 것이 직장인들의 피로를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음료로 자리잡은 것이 불과 25년 정도 되었다. 현재 도시의 주변 상권은 커피전문점이 몇 집 걸러 하나씩 있다.
커피의 역사는 2000년이나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 커피의 원산지는 에티오피아의 고산지대에서 재배되어 이슬람세계의 주요 차로 등장하게 된다. 오스만투르크족의 활발한 무역활동으로 유럽쪽에 서서히 알려지게 되었으며, 십자군 전쟁을 통하여 유럽 각지에 커피가 널리 퍼지기 시작하였다.
커피는 지금의 예맨에서 거의 독점적으로 재배되었으며 고급차로 시작하게 되었다. 예맨의 모카항에서 이태리 베니스항으로 무력거래가 이루어지면서 커피를 모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까지 하였다. 모카는 예맨의 항구이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특히 이태리 상인들로 부터 유럽의 퍼져나간 커피는 이태리 이름을 가진 것이 꽤 된다.
도피오, 마키아토, 카페라테, 카푸치노가 그것이다. 도피오는 에스프로소 2배라는 의미이고, 마키아토는 얼룩지다라는 뜻으로 우유로 얼룩을 만든다하여 이름지어 졌다. 카페라테는 라테(우유)를 넣었다는 뜻이고, 카푸치노는 생크림을 수도사의 뽀족한 두건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것이다.
중세 이전에는 커피는 이교도(이슬람교) 사람들이 먹는다하여 악마의 음료하였으나, 유럽인들이 점차 선호하는 차가 되면서 교황의 공식적인 선포를 하여 더욱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슬람은 술을 먹지 않기 때문에 이를 대신하는 각성제로 커피를 선호하게 된것이다. 특히 커피는 예맨으로부터 나무등이 일체 반출이 되지 않아 고가에 유통되고 있었다. 이를 네덜란드에서 온실재배에 성공함으로 인해 식민지를 통한 재배가 급속도로 확산되게 되었다. 네델란드는 인도네시아의 자바섬과 아메리카의 기아나에 섬었으며, 프랑스는 프랑스령 기아나에 영국은 자메이카에 커피를 심어 대량생산읗 하기에 이른다. 대부분의 커피는 적도 부근의 고산지대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이를 커피 밸트라 하였다. 커피가 확산되기 이전에는 로스팅(커피 알갱이를 볶은 것)으로 유통되었는데 이렇게 대량 생산되면서 커피가격은 급속하게 떨어져 일반인들까지 선호하는 차가 되었다.
커피가 대중적으로 확산되면서 커피하우스라는 커피전문점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 대표적인 커피하우스가 1720년에 배네치아에서 플로리안 카페가 문을 열었다. 커피하우스는 오스만제국의 역사, 철학, 문화 토론장과 같은 성격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영국에서는 로이즈 커피하우스가 있었다.
커피하우스는 토론의 장일 뿐만 아니라 지식인, 예술가, 정치가들의 모임장소로도 활용되었다.
오스트리아의 커피하우스는 오스만제국과의 전쟁으로 생겨났는데, 비엔나 커피는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 시작한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것이다. 바흐도 커피 칸타타라는 작품을 만들정도로 빈에서도 커피는 유럽전역의 사랑을 밭는 차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인스턴스식 커피를 보통 커피라고 이야기 하듯이 각 나라마다 선호하는 커피 음료문화가 시작되었다. 터키를 중심으로한 커피문화는 설탕이나 우유 등을 넣지 않은 커피를 선호했으며,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는 커피에 우유를 타 부드럽게 하여 먹는 경우가 많다. 미국에서는 연한 커피로 입을 행구는 아메리칸 커피 스타일이 주류를 이루었고, 오스트리아는 부드러운 맛이 합쳐진 에스프레소를 즐겨 마신다.
이렇듯 이슬람교도들의 명상을 돕는 커피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글로벌 기업들이 커피산업에 뛰어들어 많은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하였다. 식민지로부터 커피생산을 하면서 저렴한 노동력으로 커피생산을 하며 큰 이익을 얻는 기업들에게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불공정 거래를 방지하기 위한 운동이 공정무역이다. 어린이까지 동원하여 커피농장에서 돈을 벌어야 하는 실정을 일부 지식인들과 선진국에서는 여유있게 즐기는 음료로 탈바꿈하는 것이 가식적이고 불편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현재 지구 환경을 살리자는 운동과 함께 축구공, 초콜릿, 설탕 등도 공정무역으로 확대되고 있어 후진국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가 이루어지고 있다.
노동자들의 착취로 일군 커피의 문화가 현대에서도 노동을 독려하는 각성제로 일반화 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역사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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